처음 만나는 사람이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에 앞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저는 가끔 전시회를 여는 시각 예술가이기도,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려주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편집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장황하게 말하기에는 어딘가 계면쩍어 그냥 그림도 그리고 이것저것 한다고 얼버무리고 만다. 그럼, 사람들은 나에게 부럽거나 멋지다고들 툭, 하고 답한다. 지나가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쑥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하여 그냥 웃음으로 때워 버리고 만다. 다른 대답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지만 깊게 이어지지 않을 인연들에게 나에 대해 가타부타하기에도 귀찮은 마음이고, 그들이 내 삶에 대해 상상하는 것들을 애써 깨고 싶지도 않다.